놀자/자유의 바람

<조선>, 팽개친 '육하원칙' 물어내라. (펌) 평미레

유나톡톡 2006. 8. 23. 02:12

<조선>, 팽개친 '육하원칙' 물어내라.
내용은 기대도 안해. 형식이라도 갖춰야지.  / 평미레

<조선>, 팽개친 '육하원칙' 물어내라.  by 평미레

 

우리는 '육하'원칙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육하'라는 말이 뭘 가리키는 지 잘 모른다. 물론 그게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라는 건 다들 안다. 유식해 보이려고 '5W1H'라고 쓰고는 'who, when...' 등의 영어 낱말을 나열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걸 왜 '육하'라고도 하는지는 모른다.

 

'육하'는 중국말 '리우허(六何)'를 한국식 발음으로 읽은 말이다. 중국서도 쓰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누가'는 '하인(何人)'이고, '언제'는 '하시(何時)'이다. '어디서'는 '하처(何處)'이고 '무엇을'은 '하사(何事)'이다. '어떻게'는 '하법(何法) 혹은 여하(如何)'이고 '왜'는 '위하(爲何)'다. 이렇게 앞뒤에 '어찌 하(何)'가 든 말 여섯 개를 뭉뚱그린 말이 바로 '육하'다.

 

영어권에서는 '육하'를 '5W1H'라고 부르지만 중국사람들은 이것 마저 '리우더블유(六W)'라고 부른다. '어떻게'를 가리키는 '하우(how)'를 머릿글자를 따서 '에이치'로 보지 않고, 꼬릿글자를 따서 그대로 '더블유'로 보기 때문이다.

 

육하원칙은 초등학교 때부터 가르치는 글쓰기의 기본이다. 한 덩이의 내용을 글로 나타내려면 적어도 그 여섯 가지는 명시해야 '정보' 가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보도를 생명으로 한다는 언론 보도에서 육하원칙은 철칙이라고들 곧잘 떠드는 것도 같은 까닭이다.

 

하지만 한국 수구언론은 육하원칙 무시한 지 오래됐다. 조금만 껄끄러우면 K의원, P모씨 등 유령이 등장한다. 사건 주체인 '누가'뿐 아니라 인용 주체인 '누가'까지 생략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게 누군지 알 사람은 이미 다 안다'는 코멘트를 붙이기도 한다. 웃긴다. 기사를 뭐 하러 쓰나.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읽어도 모르는데.

 

가장 심한 경우는 보도 기사를 쓴 기자인 '누가'도 생략된 경우이다. 지금은 그래도 '바이라인'이라며 기자 이름을 밝히는 게 관례지만, 십여년 전만 해도 기자 이름 없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만큼 기자들과 언론사들이 자기들의 기사를 부끄러워했다는 말이다.

 

핵심인 '누가'가 빠져버리니 '언제, 어디서'가 애매하거나 헷갈리는 건 다반사다. 구체적인 시간, 장소를 밝히면 사건의 주체나 인용자와 인용대상이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밝히는 글쓰기가 아니라 숨기는 글쓰기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알고 있는데 말은 안 해 주겠다'는 거다. 그런 게 원래 언론의 할 일이던가?

 

21세기 들어서도 그런 보도가 있겠느냐고 묻는 사람들은 순진한 사람들이다. 한국 언론은 21세기와 19세기가 별로 다르지 않다. 1백여년 전의 독립신문이나 대한매일신보를 한번 읽어 보라. 기사 쓰는 방식은 지금의 <조선일보>나 <문화일보>나 <세계일보>와 별반 다름없다. 육하원칙에 관한 한 그렇다는 말이다.

 

21일 새벽 4시경 <세계일보>는 여당 의원이 1995년 미성년자 남고생과 5년간 동성애를 해왔다는 인터넷 기사를 '단독'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기사에는 '누가'에 해당하는 실명이 전혀 없다. '언제'도 연도만 나와 있고, '어디서'라고 명시된 게 '마포에서' 정도다. 완전히 유령기사다. 육하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무엇을'에 해당하는 '동성애'만 부풀려져 있다.

 

평미레는 한국 욕하면서 외국 들먹이는 걸 아주 싫어하지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뉴욕에서는 2류 신문 취급받는 <뉴스데이>나 3류 신문인 <뉴욕포스트>도 그런 걸 기사로 내보내지 않는다. 기자들부터 피한다. 그런 기사에 자기 이름 붙여 내보내면 <뉴욕타임즈>나 <월스트릿저널>에 스카웃될 가능성에 스스로 못질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황색 찌라시 <글로브>나 <스타>라면 또 모를까.

 

그런데 <세계> 기사를 낼름 받아 쓴 언론사가 둘이나 있다. <문화일보>와 <조선일보>다. 인터넷 기사 게재시간을 보니 둘 다 <세계> 기사를 받아쓴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22일 새벽 6시경과 오후 6시경에 각각 조사해 보니 이 두 신문을 빼면 그 기사를 보도한 신문은 전혀 없었다. <한겨레신문>은 물론이고 심지어 <동아>와 <중앙> 조차 무시했다.

 

<문화>는 <세계> 기사를 전재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세계>가 '여당의원'이라고 한 것을 '여당 중진의원'으로 바꾼 것이다. 그건 <문화>의 취재 결과일까? 그래서인지 <문화> 기사는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조선>은 <세계> 기사를 대폭 압축 요약했는데 바로 이게 압권이다. 별로 길지 않으니까 한번 <조선>기사 전체를 옮겨놓아 보자.

 

연예계 지망생 “與의원과 동성애” 주장
"연예활동 도움약속 어겨"/ 의원측 “명예훼손訴 낼것

연예인 지망생 A(28)씨가 최근 “열린우리당 B의원이 ‘연예계 진출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1995년부터 동성애 관계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내용의 진정서를 여당과 청와대에 제출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A씨는 또 이날 일부 언론을 통해 “고교생이었던 1995년 길에서 만난 B의원이 ‘연예계 진출을 돕겠다’고 해 연락처를 줬고, 이후 연락을 하며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B의원이 연예활동을 도와주지 않고 생계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아 관계를 폭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B의원은 “A씨를 아는 것은 맞지만 부적절한 관계를 갖지 않았다. 이를 증명할 자료들도 확보했다”며 “A씨를 협박·공갈·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고소할 계획”이라고 했다. (정우상기자 imagine@chosun.com, 입력 : 2006.08.21 14:07 40' / 수정 : 2006.08.22 05:48 26')

 

어떤가. 마치 직접 취재한 것처럼 꾸민 정우상 기자의 이 기사에서 육하원칙을 발견할 수 있는가? '무엇을'은 확실히 알 수 있다. '동성애'와 '진정서'다. 그러나 '누가'는 전부 익명이다. '언제'와 '어디서'는 점입가경이다. '1995년부터'와 '길에서'다.

 

팩트가 없으니 '어떻게'가 황당할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이 길 가다가 고등학생한테 연예계 진출시켜 주겠다고 연락처를 줬는데 그 고등학생이 연락을 해서 동성애를 시작했다는 거다. 동성애를 5년간 했다는 데 95년부터 2006년까지 11년 중에서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도 알 수 없다. 수준 미달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1등 신문' 얘기나 꺼내지를 말던가.

 

이 기사가 <세계> 기사 인용이라는 의심을 산 것은 "일부 언론을 통해"라는 표현 때문이다. 그러나 출처는 익명 처리했다. 정말 대단한 <조선>이다. <조선>은 어째서 보도문의 철칙이라는 육하원칙과 <세계>의 지적재산권(?)까지 무시해 가면서 이런 유령 기사를 쓰는 걸까?

 

그건 한 기사 안에 "열린우리당"과 "동성애"를 묶을 수 있는 좋은 기회기 때문이다. 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청와대"도 문장 중에다가 덤으로 박아 넣을 수 있다. 그럼 된 것이다. 사실 확인은 천천히 하거나 안 해도 된다. 일단 싣고 보는 것이다. 그나마 <세계>는 11문단의 긴 기사를 내보냈지만 <조선>은 세 명사를 중심으로 딱 3문단으로 줄였다.

 

효과는 만땅이다. <조선> 독자들은 분기탱천이다. 그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상당부분이 관리자나 게시자에 의해 삭제됐다. 얼마나 지독한 말들이었는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나마 괜찮다며 남겨둔 댓글 중 찬성 수가 가장 많은 것 두 개만 인용해 보자.

 

여기서 열린우리당이라 함은 개,돼지등의 짐승들을 가두어 놓은 의미의 우리인데 그 우리가 열려있으니 어찌 세상이 온전하기를 바라겠는가? (오창우, 찬성 33명, 08/22/2006 13:58:03)

열우당 에이즈 검사 해라. 더러운 놈이 국회에 있어서 남들 별 옮겠다. ㅜ 퇴다 ㅜ 퇴..더러워...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민선기, 찬성 19명, 08/22/2006 13:33:39)

 

<조선> 독자들은 유령 기사만 가지고도 '열린 우리당' 욕을 바가지로 퍼붓는다. 기사 보완을 촉구한 댓글은 단 하나도 없었다. <조선> 독자들의 반응수준이 이렇다. 고깃덩어리 하나 던져주면 경쟁하듯 물어뜯고 본다. 그게 썩은 고긴지 살점 없는 뼈다귀에 불과한지 가리지 않는다. 그 중에는 대학을 나왔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텐데....

 

이게 바로 <동아>나 <중앙>하고도 또 다른 <조선>의 면모다. <중동>마저 망설이는 것도 <조선>은 해치운다. <조선>의 목적은 '보도'가 아니라 '선동'이기 때문이다. '보도'에는 따라야할 '지침'이 있지만 '선동'에는 수단과 방법이 없다. <조선>의 육하원칙 폐기는 언론이기를 포기했다는 뜻이다.

 

이번 유령기사 건을 통해 <문화>가 <중동>을 제치고 <조선>의 반열에 오르려고 기를 쓰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언론 아닌 언론이 '육하원칙'이나마 지킬 때까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내용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 형식이라도 언론다워 보라는 말이다.

 

그게 정 어려우면 이번 '동성애' 유령 기사를 기회로 그냥 황색 찌라시로 커밍아웃 하던가....

 

평미레  2006/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