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포터에 나오는 펜시브처럼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을 저장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얼마 동안 찌라시 언론들의 삽질과 선간위의 망발을 보면서 대체 세상이 어찌 되려고 이러나 싶기도 하다가 망연자실 허공을 쳐다보곤 했는데 얼마 전 동렬거사의 영화평들을 읽다가 이런저런 생각들이 얽히고설켜서 이젠 많은 잡념들을 뭔가 한 가닥으로 꿰어 내 놓아야 맘이 편해 질 것 같아서 몇 자 여기에 적어 봅니다.
생각의 꼬리는 한류라는 곳에서 출발합니다. 최근 몇년 동안 동남아를 휩쓸었던 한류. 그 명칭과 의미 등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정의하고 재단했지만 그런 문제는 이곳에서 깊게 다룰 필요는 없다고 보고 다만 다음의 논의를 위해서 그게 문화와 관련된 것이다라고만 짚고 넘어갑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류가 아시아에 퍼져 나갔다는 말은, 한국의 문화가 전파되었고 그것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고 보여집니다. 이 대목에서 다음 질문이 꼬리를 물고 나옵니다. 왜 한국의 문화인가? 왜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한국의 문화가 아시아 전체를 적셨을까?
동렬거사의 진단은 중국문화의 허무맹랑함과 일본의 허무주의(맞나?)와 대비되게 한국의 진지한 유교주의가 그 근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조금 다른 곳으로 향합니다.
문화라는 것은 정치, 경제, 사회라는 틀 안에서 노는 것이고 따라서 그것들이 어떤 틀을 갖고 있느냐와 밀접한 연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을 한국의 문화, 즉 한류와 연계시켜 보면 그것이 흥한 이유와 그것이 왜 지금 위기인가를 잘 보여줄 수 있다고 봅니다.
먼저 한국의 문화가 아시아를 휩쓸게 된 이유를 적어보겠습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 한국은 이미 일본을 넘어 아시아 최고 수준의 민주화를 달성했다는 것을 그 첫 번째 이유로 들고 싶습니다. 일본은 60년대 학생운동이 최고조에 달했지만 결국 자민당 정부의 항복을 받아 내지도 못했고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성취해 내지도 못했습니다. 반면, 아직까지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서구의 수준으로 자라기까지는 더 많은 피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적지 않지만, 단언컨대 우리의 정치적 민주화는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도 더 굳건한 토대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6.29 선언 20주년이 되었죠. 군사정권의 항복을 받아내고 야당이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고 기성 언론의 발목잡기를 뿌리치고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것, 이것들은 국민에게 군사정부의 압제도 뚫고 나갈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심어 주었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군사압제를 이겨낸, 불의를 온몸의 저항으로 헤쳐 나온 소중한 경험이 지금 대한민국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40대의 사고체계 속에 녹아 있는 것입니다. 그 경험은 국민의 정부를 참여정부가 계승케 하는데도 작동했고 탄핵의 반동 속에서도 올곧게 작동하며 대한민국을 정치적 민주화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봐도 한국의 시스템은 일본보다 전망이 좋다고 봅니다. 사람들은 일본이 버블경제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겪고 있는 이유로 금융시스템의 개혁실패를 들곤 합니다. 반면에 한국은 자의든 타의든 97년 IMF를 겪으며 금융시스템을 혁신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참여정부까지 이어져 오며 경제의 체질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환율 하락에도 수출은 줄어들지 않고 있고 무역흑자도 해마다 쌓여가고 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경제가 바람직하게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역동성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현상의 하나라고 봅니다. 그러한 틀 속에서 노는 문화 역시 주목받는 게 당연한 것 아닐까요?
문화라는 것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기 마련인 것입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민주화되고 건전화된 여건에서 자라는 문화가 그러지 못한 곳으로 흐르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가 아시아 전역을 적시는 한류가 되어 퍼져 나갔다는 것도 당연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한류를 보고 이해하는 저의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작금 당면하고 있는 혹은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한류 위기의 징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이는 다시 말하면 한국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위기라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류가 확산되고 보다 넓은 저변을 가진 현상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더 역동적이고 유연해져야 합니다. 정치적 성역이 없어지고 경제적 투명성이 더욱 제고되고 사회적 창의력이 극대화될 때 한류의 샘은 마르지 않고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그럼 위기는 어떻게 오고 있는 것일까요? 봅시다.
- 정치적으로는 반동적 회귀를 꿈꾸고 있는 한나라당이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작금의 현실.
- 전입 3번 잘못했다고 국무총리직을 수행할 수 없는 시대에 14번이나 위장전입을 한 사람이 최고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 후보가 되어 있다는 이 불합리성.
- 대통령을 청와대에 가두고 국민과의 대화 창구를 단절시켜 버린 채 온갖 왜곡된 정보만을 국민에게 전달하는 십상시 내시환관 언론 (이는 ‘찌라시’가 아닌 “십상시” 언론임을 강조!!)
- 독재자의 딸이 온갖 부정 장물을 깔고 앉아 최대 야당의 당수 노릇을 하며 나라야 잘못되든 말든 정권만 되찾아 오면 된다는 논리로 국정을 볼모 삼아 국민을 기만하고 있는 현실.
- 세계 최고 수준의 인프라가 깔려 있는 나라에서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겠다면서 인터넷에 쓰는 글을 검열하겠다는 발상을 실천하고 있는 이 현실.
- 당연히 해야 할 기자실 폐쇄에 대해서는 거품을 물며 국민의 알권리 침해라고 언론에 인터뷰해가며 악을 쓰던 넘들이 정작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말살하겠다는 위헌적 제도에 대해서는 입을 싹 닦는 가식적인 지식인들
- 성희롱을 해도 차떼기를 해도 위장전입을 해도 정권만 찾아오면 된다고 생각하는 지역 패권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 지지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국민
나열하자면 아직도 많을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한국의 정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들이고 나아가 이러한 것들이 바로 궁극적으로 한류의 샘을 메마르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지난 4년 반 동안 어떠한 경기부양책 없이도 한국의 경제는 높은 주가 지수에 반영된 것만큼의 성장을 해왔고 미래 발전을 위한 토대도 튼실하게 준비해 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뒷골목의 주먹들을 동원해서 사적인 보복 행위를 하는 재벌 총수가 있고, 현 정부의 정책이 맘에 들지 않아 투자를 미루는 기업도 있다고 합니다. 자본을 시장의 논리 이외의 것과 연계시켜 집행하는 관행을 계속하려는 노력이 진행되는 한 그것들을 먹고 자라는 문화가 건전해질 리 만무하지 않습니까?
한상궁과 장금이의 ‘좋은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과 정성’이 임금의 공정한 판결이 없었다면 어떻게 빛을 발할 수 있었을까?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대장금과 같은 훌륭한 문화상품이 아시아를 휩쓸고 유럽과 전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이 공정하고 투명한 판관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전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는 이야기 ‘꺼리’가 사회전반으로부터 무럭무럭 피어오를 것입니다.
좋은 콘텐츠의 90%는 시나리오에서 결정됩니다. 그리고 그 좋은 시나리오는 생활저변에서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만든 디자인은 미국이나 서구에서 자란 사람이 만든 디자인과 같은 색감이나 구도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것이 더 좋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이 남들보다 나아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투명성, 사회적 개방성과 창의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그것은 생활의 질 문제뿐 아니라 한류의 생명력과도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입니다.
대선을 앞두고 한류를 걱정하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번 대선에서 한국사회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의 반동을 허용한다면 그때는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한류의 위기’가 아니라, ‘다시 아스팔트 위에서 최루탄 지랄탄 맞아가며 짱돌 들고 화염병 던져야 할 상황이 재현되는 것’으로 바뀔 것입니다.
ⓒ 렘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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